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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

중국인은 싱가포르에서 가장 큰 민족 그룹입니다.

중국인은 싱가포르의 가장 큰 민족 그룹으로, 거의 총 인구의 4분의 3을 차지합니다. 언어, 식문화, 즐길거리 및 축제 등 중국 문화의 영향이 싱가포르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것이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대부분은 푸젠성 및 광둥성 등 중국 남부에서 건너왔습니다. 호키엔 및 테오추 언어 그룹이 가장 많으며, 그 다음으로는 광둥어, 하이난어 혹은 소수 민족의 언어가 있습니다.

리킵린(Lee Kip Lin)과 국립 도서관 이사회 싱가포르의 중국인들 중 다수가 중국 남부 출신 이민자입니다.

많은 이주자들은 본국의 힘겨운 상황을 피해서 싱가포르로 와서 막노동꾼이나 노동자가 되었습니다. 돈을 버는 재주가 있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싱가포르의 성공한 사업가들 중 많은 사람들이 중국계입니다. 오늘 날 싱가포르의 중국인들은 정치, 비즈니스, 스포츠 및 연예 분야 등 다양한 사회 분야를 대표하고 있습니다.중국계의 전통문화는 다양한 현지 민족문화와 섞였으며, 서구 문화의 영향도 받았습니다. 하지만 중국의 음력설은 여전히 큰 명절입니다. 시끌벅적한 설날풍속은 중국인들에게 설날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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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라시아계

싱가포르의 유라시아인들은 동양과 서양이 만나는 싱가포르만의 에너지를 잘 보여줍니다.

규모는 작지만 영향력있는 유라시아인 공동체는 동양과 서양이 만나는 싱가포르만의 에너지를 잘 보여줍니다. 유라시아인은 유럽과 아시아인 혈통이 섞인 민족으로 19세기 초 이후부터 싱가포르에 거주해 왔습니다.

싱가포르의 유라시아인 대부분은 포르투갈인, 네덜란드인 및 영국인으로 유럽의 뿌리를 찾을 수 있고, 중국인, 말레이시아인 및 인도인으로 아시아의 뿌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유 라시아인이 처음 등장한 시기는 영국이 1819년 싱가포르를 발견한 이후이며, 주로 페낭과 말라카에서 이주해 왔습니다. 식민지 시기에는 많은 유라시아인들이 정부기관, 유럽계 은행 그리고 상업 및 무역회사 직원으로 고용되어 일했습니다. 여성들은 주로 선생님과 간호사로 일했습니다.

첫 유라시아인은 영국이 싱가포르를 발견하고 몇 년 뒤에 등장했습니다.

오늘날 싱가포르에는 전체 인구의 1%에 못 미치는 1만 5천 명에서 3만 명 가량의 유라시아인들이 있습니다. 그렇긴 해도 이들은 주요 싱가포르의 미디어와 연예 산업에서 두각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영어가 유라시아인의 공용어지만, 이들 중 일부 옛 세대는 포르투갈 방언인 키리스탕(Kristang)을 사용합니다.

유라시아인들은 물리가타우니 수프(카레 수프), 셰퍼드 파이 및 세몰리나로 만든 수기 케이크등 그들만의 음식 문화와 전통을 가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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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인

인도 문화는 싱가포르의 다인종 사회에 활력을 더합니다.

인도계는 싱가포르에서 세 번째로 큰 민족이며, 인도 국외의 인도인 인구 중 가장 큰 규모입니다.

주로 영국이 싱가포르 식민지를 세운 1819년 이후 남인도에서 건너왔습니다. 오늘날 인도계 주민 중 60%가 타밀 민족계의 후손입니다. 싱가포르의 인도 민족의 절반 이상은 힌두인입니다.

기업가적인 본능으로 알려져있는 인도인은 싱가포르에서 사업을 시작하여 섬유에서 보석까지 거의 모든 상품의 무역에 종사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인도계는 정치계 및 전문 분야에 많이 진출해 있습니다.

싱가포르의 인도인은 인도 국외에서 가장 큰 인도인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인도 요리를 빼놓고는 싱가포르의 인도인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없습니다. 토사이(Thosai, 짭짤한 팬케이크)와 바다이(Vadai, 튀김) 같은 유명한 인도요리는 싱가포르의 다양한 미식 문화에 특별함을 더했습니다.

싱가포르의 인도 페스티벌은 형형색색의 화려함과 흥이 가득합니다. 전등 축제 디파발리(Deepavali)는 가장 주된 인도 페스티벌로, 신도들이 몸을 정화하는 의미로 피어싱을 하는 타이푸삼을 보며 특별한 여행을 즐길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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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레이계

싱가포르의 말레이인들은 촘촘하게 얽힌 공동체의 일원입니다.

싱가포르의 원조 정착민은 말레이인으로, 현재 두 번째로 큰 민족입니다. 말레이 문화는 이후에 도착한 다른 민족들에게 영향을 끼쳤습니다.

싱가포르의 말레이인들은 인도네시아 자바와 바웬 및 말레이시아 반도 등, 이웃 지역에서 이주를 해 왔습니다.

싱가포르 현지에서 사용하는 말레이어는 인도네시아보다는 말레이시아 반도에서 사용하는 언어와 비슷합니다.

말레이인들은 싱가포르에서 가장 오래된 정착민들입니다.

나시 레막(향기가 나는 쌀에 코코넛 크림과 판단(pandan)잎을 더한 것)와 미 레부스(매콤한 소스에 조리한 노란 면)은 싱가포르인들의 미각을 사로 잡은 요리이며, 싱가포르 길거리 음식 중 가장 유명합니다.

말 레이인의 대부분은 무슬림으로, 하리 라야 푸아사(Hari Raya Puasa)와 하리 라야 하지(Hari Raya Haji)라는 축제를 통해 촘촘히 얽혀 있는 싱가포르 사회가 형형색색으로 화려하게 그들의 문화와 종교를 축하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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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라나칸

싱가포르의 페라나칸인들은 주변 지역 문화간 멋진 융화를 잘 보여줍니다.

매콤한 말레이풍 영향을 받은 페라나칸 음식에서 이 민족의 문화를 가장 잘 느낄 수 있습니다.

페라나칸은 싱가포르 지역 문화의 멋진 융합을 잘 보여줍니다. 페라나칸이라는 명칭은 중국인 혹은 인도인 남성과 현지 말레이인 혹은 인도네시아인 여성 사이에 태어난 후손을 일컬으며 이들은 동남아시아 전역에 퍼져 있습니다.

싱가포르의 페라나칸 중국인이라고도 불리는 해협 중국인은 15세기 말라카에서 기원하는데, 현지 말레이인 여성과 결혼한 중국 상인의 후예들입니다.

치티 멜라카(Chitty Melaka)라고도 불리는 페라나칸 인도인은 현지 여성들과 결혼한 남인도 힌두인 무역상의 후예이며, 자위 페라나칸(Jawi Peranakan)은 현지 여성과 결혼한 남인도 무슬림 무역상의 후손입니다.

초기 페라나칸들 다수가 무역상 혹은 상인이었으며, 부동산, 선적 혹은 은행업에 종사했습니다.

해협 중국인들 다수는 더 넓은 중국인 사회로 융화되었지만, 음식과 전통 의상에서 보듯이 여전히 그들만의 독특한 문화적 특성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 요리를 하는 여성들의 이름을 딴 논야(Nonya) 음식은 향신료와 코코넛 밀크를 사용하는 등 강한 말레이와 인도네시아의 영향이 느껴집니다.

페라나칸의 전통 여성 드레스는 “논야 케바야(Nonya Kebaya)”라고도 알려져 있는데, 자수 디테일이 아름답습니다.

페라나칸 여성들은 공식 행사에 말레이 사롱 케바야(Malay Sarong Kebaya)의 영향을 받은 논야 케바야(Nonya Kebaya)라는 전통 드레스를 입습니다.

섬세한 전통 의상은 장미, 오키드 혹은 나비를 모티브로 한 자수로 장식된 블라우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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